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즈카 오사무 (문단 편집) === 진실 === 이러한 루머 때문에 데즈카 오사무의 인품에 대해서까지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음해에 가깝다. 애니메이션 쪽에서 데즈카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 대표적으로 [[니시자키 요시노부]]]도 '[[사업]]을 하기엔 너무 착했다.'라고 평하고 있으며, 만화계에서 같이 일했던 [[후지코 후지오]] 등도 그의 인품을 찬양할 정도로 인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좋은 이야기만 나돌고 있을 정도. 만화 편집자들은 그가 마감 때 자주 도망간 걸 두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회고하는 편이다. 생전 지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사리사욕보다도 작품 욕심이 훨씬 강하던 인물로 돈에 미친 사업가가 아닌 작품에 미친 의욕적인 창작가로서 보는것이 맞다. 실제로 데즈카는 꾸준히 'JUMP', '인어' 등의 실험적이고 비상업적인 [[단편 애니메이션]]들 역시 꾸준히 제작하였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로 번돈을 애니에 쏟아붓고, 스스로 도산해가면서까지 애니메이션 시장 구조 자체를 만들어낸 인물임은 분명하다.[[https://m.ruliweb.com/etcs/board/300780/read/52484728|#]] 만화 연재 → 애니메이션화라는 방식은 물론, 애니메이션의 대중화에도 큰 공을 세웠으며, 애니메이터들의 대우 역시 인프라가 구축되고 일본 경제가 안정되어가면서 점차 개선되었다. 애초에 데즈카가 만든 애니메이션은 '''인력과 돈이 덜 들어가는 염가형 작품이었다.''' 데즈카가 사용한 대안은 제한된 제작비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리미티드 기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리미티드 기법이란 애니메이션에서 모든 사물과 캐릭터의 움직임을 극도로 간략화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자면 화면 내의 모든 그림이 고정된 상태에서 캐릭터의 입만 뻥긋뻥긋 움직이는, 일본 TV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묘사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반대의 개념인 풀 애니메이션은 대표적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단순한 대화 장면에서도 캐릭터의 입, 눈, 눈썹, 머리카락 등이 계속해서 움직이며 배경 역시 쉬지 않고 움직인다. 또한 TV 영상을 초당 24프레임으로 잡아야 하는데 6,,1/4,,, 8,,1/3,,, 12,,1/2,,프레임으로 움직임을 때움으로써 컷 수를 줄였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임을 가까스로 성립시키기만 하여 양산형 작품을 빠르게 유통시키는 것이 데즈카의 방식이었다.[* 단 데즈카나 일본만의 방식이라 하기는 어렵고, 미국 역시 [[해나-바베라]] 등 비교적 자금력이 약하고 TV에 의존한 스튜디오 등에서 원가저감 방법이 사용되었다.] 리미티트 기법으로 최대한의 애니메이션다운 표현을 궁리했던 것은 이후 [[애니메이터]]들의 업적이었고 [[철완 아톰]]은 당시에는 '테레비 망가'라고 불리는, 즉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작품이었고 [[토에이 애니메이션|토에이 동화]]를 비롯한 기존의 애니메이션 업계의 사람들에게는 조소의 대상이었다. '''직원을 학대해가면서 만든 작품이 아니고, 정말 저예산에 걸맞는 퀄로 적당히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당시 [[일본/경제|일본 경제]] 상황으로는 리미티드 애니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시피 하였고,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액션에서 큰 강점을 보이는 리미티드만의 기법들이 만들어졌다. [[카나다 요시노리]]의 스타일이나 [[이타노 서커스]], [[이소 미츠오]]의 풀 3콤마 등등. 예를 들어 [[거대로봇물]] 같은 장르는 로봇의 디테일적인 면에서 풀 애니메이션을 전부 그리는 [[서양]] 애니메이션에서는 힘들고, 리미티드의 적은 장수로 많은 효과를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만 구현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데즈카가 50만엔을 받고 아톰을 만들었다는 게 허구였다는 주장도 있다. 2007년에 출판된 '津堅信之『アニメ作家としての手塚治虫-その軌跡と本質' 라는 책에는 당시의 관계자들이 증언이 적혀있다. 이를 토대로 말하자면 애당초 50만엔이라는 방송사 요구도, 50만엔의 제작비 따위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관계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데즈카 오사무는 대외적으로는 50만엔을 받았다는 것으로 하고, 몰래 뒤로는 150만엔을 받았으며, 데즈카는 "편당 50만엔으로 팔아라. 그 이상은 올리지 말아라. 이런 낮은 가격이라면 다른 데에서는 못 만들 테니까" 라면서 저가 덤핑 전략으로 TV 아니메 시장를 독점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영업부 차장은 "까놓고 제작비는 얼마를 받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로얄티(캐릭터 상품 등)로 수백만 엔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この時、手塚は「(一本につき)五十万で売って。それ以上高くしないでください。それ(くらい低価格)なら他でつくれないでしょ」と指示、「手塚さんはテレビアニメを独占するつもりだったのかどうか。萬年社は『安すぎる』と、手塚さんに内緒で百五十万円を虫プロに払っていました。実際は制作費がいくらなんて、どうでもよかった。ロイヤリティーが日銭で何百万円と入ってきたんですから。」(虫プロ & 元営業部次長 & 須藤将三)] 물론 경리상에는 처음부터 150만엔으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가격인상을 교섭해서 아톰은 방영된 4년간에 최종적으로는 1편당 350만엔이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 당시 무시 프로덕션의 영업부 차장의 증언.[* もちろん、経理上は最初から百五十五万円で処理していました。その後も値上げ交渉をしていって、『アトム』は放映された四年間で、最終的には一本三百万円を超えるまでになったと思います。(p.129)] 또한, 당시 [[무시 프로덕션]]의 애니메이터는 여타 애니메이터들보다 꽤 좋은 대우를 받고 일했다. 블랙잭 창작비화의 인터뷰에 의하면, 제작 진행 중 한명이 연극을 한다고 나가자 독립할 때까지 매달 데즈카의 사비로 돈을 부쳐줄 정도, 현재의 애니메이터의 수익이 쪼들리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인데, 첫번째로는 [[1990년대]] 버블경제가 터진 이후 20년이 넘도록 일본의 애니메이터 임금이 동결됐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현대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고전애니에 비해 그림체가 매우 디테일한 편인데, 1장당 얼마 하는 식으로 수익이 되는 애니메이터 특성상 많은 장수를 그리기가 어려워진 것. [[1989년]]에 돌아가신 데즈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음해에 가깝다. 실제로 당시의 애니메이터는 작업 환경은 열악하고, 퇴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근무 환경은 좋지 않은 직업으로 악명이 높았으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여겨져서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직업이다. [[아라키 신고]], [[카나야마 아키히로]]는 만화가였지만, [[애니메이션]]이 더 돈이 된다는 이유로 데즈카의 무시 프로덕션에 애니메이터로 들어간 사례였다. 데즈카가 직원들을 착취했다면 그들은 만화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있던 [[린 타로]]가 무시 프로덕션으로 옮긴 것도 데즈카가 토에이 보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신생 [[애니메이션 제작사]]로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토에이보다 돈을 2배 더 주겠다.''' 라는 조건으로 애니메이터와 연출가를 모집했다고 한다. [[스즈키 요시타케]] 말로는 직원들이 1만 엔 정도 돈을 받고 일하는 게 안쓰러워서 데즈카에게 "이건 더 줘야 한다." 라고 말을 했더니 다음 달 직원 봉급이 '''3배로 올라''' 3만 엔이 되었다고 한다.[[http://sunrise-world.net/feature/feature.php?id=8511|#]] 그래서 무시 프로덕션 직원들은 대부분 자가용 차를 끌고 다녔다고 한다. 무시 프로덕션이 망하고 직원들은 [[선라이즈(브랜드)|선라이즈]], [[매드하우스]] 같은 회사를 차려서 독립을 했는데 이건 직원들이 회사를 차릴 정도로 돈을 벌었음을 의미한다. 대신 철야가 기본 조건이었다고.[[https://gendai.ismedia.jp/articles/-/75170?page=3|#]] [[오카다 토시오]]도 예전의 애니메이터는 고 수입 직종이었으며, 무시 프로는 돈을 많이 줘서 집을 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의 애니메이터가 가난해진 건 무시 프로가 망한 이후로 업계가 물가가 올랐는데도 임금을 올려주지 않아서라고.[[https://youtu.be/Nlek8bUAsJE?t=156|#]] 일본에서 데즈카 오사무가 이 문제로 까이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이거다. 애니메이터들에게 저임금을 준 건 오히려 후대의 회사이지 데즈카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판도 '데즈카는 존경하지만 아쉬운점도 있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며, 업계인들 중에도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는 반론이 나오는 등 상당히 평가가 갈린다. 무엇보다도 미야자키는 아톰이 첫 방영하고 무시프로가 잘 나갈 당시 애니메이터 데뷔도 안 했으며 애초에 [[토에이 애니메이션]] 출신으로 데즈카랑 같이 만나보고, 무시 프로의 사내 복지 같은 거는 경험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정작 무시프로 군단이라 불리는 무시프로 직원들은 대부분 무시 프로가 망하는 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었고, 데즈카에게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연락하고 지냈다. 데즈카 사후에 나온 [[철완 아톰|철완 아톰 3기]], [[블랙 잭(만화)/애니메이션|블랙 잭]], [[불새(만화)|불새]], [[메트로폴리스(만화)|메트로폴리스]], [[PLUTO(만화)/애니메이션|PLUTO]]를 애니로 만들 때는 무시 프로덕션 출신 연출가와 애니메이터들이 은혜를 갚는다면서 자진해서 참가했다. 정말 악덕 사장이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는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데즈카 추도문 원문 자체가 한국에서 왜곡되기도 했다. 원문은 일본 최초의 (장편)TVA 아톰을 50만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만든 '그 전례 때문에 이후 애니메이션의 제작비가 항상 낮다는 폐해가 태어났습니다[* その前例のおかげで、以来アニメの製作費が常に低いという弊害が生まれました ]'이고, 여기엔 저임금화, 생활고, 애니메이터의 수입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회사가 낮은 가격을 받아들였다는 내용뿐이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데즈카 오사무가 일하는 사원들의 월급을 직접 후려쳐서 비용을 절감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데즈카 오사무가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작화량을 줄여서 비용을 절감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나오는 원문은 それ自体は不幸なはじまりではあったけれど、日本が経済成長を遂げていく過程でテレビアニメーションはいつか始まる運命にあったと思います。引き金を引いたのが、たまたま手塚さんだっただけで。 ただ、あのとき彼がやらなければあと二,三年は遅れたかもしれない。そしたら、ぼくはもう少し腰を据えて昔のやり方の長編アニメーションの現場でやることができたと思うんです。 それも、今ではどうでもいいことですけど。 로 일단락된다. '그것도, 지금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이라는 과거회상격 발언으로 마무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문장을 처으부터 읽어보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문장의 제목이 宮崎駿『手塚治虫に「神の手」をみた時、ぼくは彼と訣別した』 '''데즈카 오사무에게서 신의 손을 봤을 때 나는 그와 결별했다.'''이다. 즉 그가 한 일이 아무래도 좋고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데즈카와는 결별했으니까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다.][* 해당 추도문은 데즈카 오사무가 저가에 수주한 것만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작심비판한 게 아니라 스토리 작품관 등 이것저것 까내리는 도중에 저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는 정도 비중이고, 이후엔 (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모든 발언이 잘못되었다(これまで手塚さんが喋ってきたことというのは、みんな間違いです。)고 전부 부정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같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발언([[https://youtu.be/H0grMrV7SXw?t=1149|19분 9초쯤부터]])을 보면,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톰은 자신이 중학교 때 봤을 땐 재밌었지만 돌이켜보면 원동화 1800장밖에 안 되는 조악한 물건이었고, 좀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애니메이션|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원동화 8000장)의 등장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회상한다. 만화가로서는 훌륭하지만 그 사고방식이 애니메이션에는 조금 안 맞지 않았나 하는, 미야자키 추도문과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 중의 언급이다. 미야자키는 원래 원동화를 많이 쓴 [[디즈니]]나 초기 [[토에이 애니메이션]] 극장판 같은 거창한 작품을 만들려는 꿈이 있었는데 데즈카 오사무가 저예산 제작 작품을 많이 배출하게 되자 방송국이나 극장계에선 '저렇게 대충 내도 팔리는데 굳이 공들여 대단한 걸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면서 애니메이션의 제작 지원을 줄이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미야자키는 토에이에서도 퇴직을 당했고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앞길도 보이지 않은 절망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욕을 굉장히 많이 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저 추도문도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작비 후려치기로 애니메이션의 또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못 만들게 한 것에 대한 원망이지 저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이걸 회사가 받는 금액이 아닌 애니메이터 저임금 관행으로 연결하려면, 무시 프로덕션이 아톰 제작시기에 이전 애니회사에 비해 임금을 덜 줬다는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톰 이전의 애니메이터는 돈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애니메이터가 먹고 살만하게 된 건 데즈카가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한 이후였다.[* 데즈카 평전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의 만화 데즈카 오사무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원래 애니메이터 지망이었지만 업계 사람에게 "애니메이터 따위 박봉에 고생만 직살나게 한다"는 말을 듣고 만화가로 돌아선 케이스다. 해당 작품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전재한다면 데즈카는 오히려 자신과 같은 이유로 애니메이터의 꿈을 접는 사람들이 더이상 나오길 바라지 않아서 사비를 털어가며 직원들의 급여를 챙겨준 것이다.] 추가로 [[https://ja.wikipedia.org/wiki/%E9%89%84%E8%85%95%E3%82%A2%E3%83%88%E3%83%A0_(%E3%82%A2%E3%83%8B%E3%83%A1%E7%AC%AC1%E4%BD%9C)|일본어 위키]]에 의하면, 철완 아톰은 저작권 표시를 붙여 상품화 권한을 확립한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라고 한다. 이전엔 저작권자 허락도 없이 해적판이 나와도 막을 수도 없는 시대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못 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작품이 성공할수록 로열티 수입을 더 가져가는 구조'''를 처음으로 만든 부분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 당시엔 [[https://news.yahoo.co.jp/byline/nakamura-ichiya/20190223-00115748/|상품화에 대한 비판]]도 일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주변에선 이 개념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일 위키에 적힌, 「話の特集」1979年7月号 瀕死のアニメーション에서 인용된 부분을 통해 1979년에도 애니메이터의 급료와 데즈카의 저가수주를 연결하는 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항변을 보면 1979년 시점에서 애니메이션 제작비 중 최소한도가 500만, 보통 600~700만 엔 정도는 스폰서가 내는 정도로 시장이 회복되었다고 밝히고 있고, 이 역시 어디까지나 회사가 받는 비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뿐, 무시 프로덕션이 직접 급료를 후려쳤다는 이야기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또 나오는 이야기가 데즈카 오사무가 애니메이션의 제작비 단가를 후려쳐서 애니메이션의 제작비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고, 저임금으로 이어지게 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따라오게 된다. 하지만 이건 잘못본 것이다. 아톰은 비용을 싸게 만들어주는 대신 저작권을 데즈카 오사무가 가졌다. 방송국은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아톰 이후의 애니메이션은 방송국이 돈을 주는 대신 권리를 방송국이 가지고 추가 수익을 얻는 경우도 있다. [[제작위원회]]에도 방송사가 많이 참가한다. 그걸 방송국이 데즈카 오사무에게 넘기는 대신 싸게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이건 단가 후려치기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작품이 히트하면 할수록 방송국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이게 단가 후려치기라면 방송국은 많은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싼 단가로 만들어주는 무시 프로덕션에게 맡겨야 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토에이 애니메이션]], [[에이켄 스튜디오]], [[타츠노코 프로덕션]] 등 다른 회사는 무시 프로덕션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받고 작품을 만들었다. 대신 이들은 로얄티와 같은 권리를 일부분 포기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새로운 비지니스를 만든 거지 단가를 후려친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는 아톰 이후로 꾸준히 올랐다. [[https://youtu.be/3i00_IYMGPA?t=839|오카다 토시오 회상]]에 따르면, (신생 제작사 [[가이낙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퀄리티 OVA를 만들어낸 '[[톱을 노려라]]'의 경우가 1편당 제작비 1260만엔 정도였던 상황에서) [[1990년]] 제작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나디아]]는 NHK에서 편당 1200만엔 정도가 제작비로 책정되었고, 오프닝음악, 한국작화예산일부 등 따로 편성된 예산을 빼고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거친 가이낙스에 최종적으로 떨어진 금액은 TVA 1화당 1000만엔~1100만엔~1200만엔 정도였다고 한다. 대신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라 저작권 로열티 수입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구조였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받는 제작비는 그 정도로 빠르게 상승되었다. 심지어 [[무시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도 꾸준히 제작비가 올랐다. 아톰과 비교하면 후기 작품인 [[도로로와 햐키마루]]나 [[내일의 죠/애니메이션|내일의 죠]]는 여전히 리미티드이긴 해도 상당히 동화의 사용량이 늘어났음을 체감할 수 있다. 아톰 이후에 [[울트라맨]] 같은 [[특촬물]]의 시대가 열렸고 아톰 수준의 저질 품질 애니메이션은 여러 특수효과로 무장한 특촬물과 경쟁할 수 없었다. 실제로 데즈카의 작품인 [[우주의 세 용사|W3]]는 [[울트라 Q]]에 밀려 시청률에서 참패했다. [[http://globalhead.hatenadiary.com/entry/20130916/p1|#]] 그 이후로는 데즈카 오사무도 마냥 저가 애니메이션만 만들지 않았다. [[철완 아톰]] ([[1980년]] 판)은 데즈카 본인이 제작에 참여했는데 상당한 돈을 들여서 만들었다. 그리고 애니메이터들이 데즈카 시절부터 계속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1980년대 [[버블 경제]] 시절에만 해도 [[스다 마사미]]나 [[사사카도 노부요시]]처럼 손이 빠른 애니메이터들은 꽤 부유하게 살았다. 오히려 그때는 화학물질이 가득한 작업 환경[* 나중에 종이에 그린 그림을 셀로 옮겨떠주는 트레이스 머신이란 기계가 [[1970년대]]부터 보급되어 원화가들은 종이와 연필로만 작업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만 해도 셀 위에 잉크로 바로 그려야 했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들이마시고 폐병을 앓거나 급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과로로 [[의문사]][* 돈은 벌 수 있어도 촉박한 납기에 과도한 작업량은 그 당시부터 문제였다. 3D였던 건 마찬가지. 지금은 여기에 물가 대비 실질 임금까지 줄었으니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하는 애니메이터들이 많았던 것이 더 문제였지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이 가정을 가질 정도로 돈을 벌 수 있었다. 문제가 된 건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http://www.janica.jp/club/modules/director/details.php?bid=2|야마사키 오사무 감독 블로그]]에 의하면, 디지털 시대가 된 이후에 동화 작업 과정이 좀 더 번거로워졌음에도[* 셀화 시대에는 연필선 이외의 형광색 등을 인식하지 않았기에 색연필 초안을 그린 종이 그대로 클린업할 수 있었고, 선화가 철저하게 연결되지 않아도 채색 문제가 안 생기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덜한 만큼 프로 애니메이터는 다들 한 달에 1000장 정도는 그렸다고 한다. 반면 디지털 시대의 동화맨 작업량은 월평균 500장이라고 [[2009년]]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느려질 수 밖에 없는 동화의 단가를 올렸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 동화가의 급여가 셀화시대 그대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http://www.janica.jp/club/modules/director/details.php?bid=3|애니메이션 업계는 가난하지 않지만 애니메이터만이 유독 가난해진 것]]이라고 한다. 디지털화가 계기가 돼서. 정리하면 데즈카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줄여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질이나 연출에 있어 퇴보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데즈카가 애니메이터들의 만성적인 저임금의 근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런 루머가 간간이 있었다. [[https://lovelovedog.hatenadiary.org/entry/20071015/atom03|2007년의 이런 글]]이나 [[https://detail.chiebukuro.yahoo.co.jp/qa/question_detail/q10154964705|アニメーターの給料 手塚治虫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런 글]]도 그런 루머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사실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고, 공통적으로 아톰 제작 시기에 무시 프로덕션은 기존 애니 회사보다 더 높은 급여를 줬다는 증언 등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1963년 아톰의 흑백 [[TVA]] 때에 정해진 것들이 악습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정말로 그때의 관성이 그대로 이어져서 [[제작위원회]]같은 새로운 관성도 생기지 않았어야 하고, [[OVA]] [[황금기]]에서부터 시작된 [[DVD]], [[BD]] 판매시장도 생겨나지 않았어야[* '방송사에서 수주받은 제작비'가 유일한 수입원일 때 그 금액이 적었다는 게 아톰 50만엔 비판의 핵심인데, 디스크를 많이 팔아서 제작비 이상을 벌어들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 그건 곧 '수주받은 제작비'라는 관성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이 시기에 오타쿠 모임을 표방한 회사, 야애니 회사 등 신생 기업도 상당히 늘어났기에, 그 신생 기업 입장에서는 돈만 벌 수 있다면, 혹은 품질을 끌어올릴 실력자를 데려올 수 있다면 굳이 과거 관례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감독 이름은 물론 원화가 이름까지도 기억될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의 가치가 높다.] 하고, 신생 제작사가 고퀄리티 OVA를 만들 정도의 편당 평균 제작비를 방송사가 TVA1화당 제작비로 내놨던 전례도 없었어야 한다. OVA도 아직 안 생겼던 1979년이면 모를까[* 「話の特集」1979年7月号 瀕死のアニメーション이라는 부분에,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비판 혹은 그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항변이 언급된다.], 수익구조 변화, 제작구조 디지털화를 포함한 각종 구조적 변혁을 겪은 지금 시대에 유독 '1963년 방송사에서 받은 제작비'의 영향력만이 악습처럼, 제작비도 아니고 데즈카 오사무가 깎은 적도 없었던 인건비 문제로 이어져 왔다는 주장은 다방면으로 검토할수록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터 [[코즈마 신사쿠]]는 애니메이터의 임금 문제는 [[선라이즈(브랜드)|선라이즈]]와 [[토에이 애니메이션]] 때문이며 데즈카 오사무는 죄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https://twitter.com/kozuma_/status/1300312683162419200|#]] 애니메이터를 직원으로 고용해 복지를 제공하지 않고 프리랜서로서 기용하는 이들 회사와 달리 데즈카 오사무는 애니메이터를 직원으로 정식 고용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트윗이 나왔냐면, 하루 전인 2020년 8월 30일 일본에서 관련 칼럼[[https://gendai.ismedia.jp/articles/-/75170#click=https://t.co/jycirKR4i0|#]]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칼럼에서는 토에이때의 두 배 이상으로 임금을 올려준 데즈카 오사무 회사의 고임금 대우,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저작권을 처음으로''' 확보한 데즈카 오사무의 전례를 다른 애니회사가 따라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리해진 수익성, 그 와중에 상품화 권한을 확보한 토에이 동화 등 당시의 애니메이션 사업 흐름을 짚고 있다. 현대에도 무시 프로덕션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영을 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교토 애니메이션]]이다. [* 교토 애니메이션의 창업자 핫타 요코(八田陽子)는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의 채색부 출신이었다. 그런 점에서 무시 프로덕션의 경영과 급여 지급 방식을 벤치 마킹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교토 애니메이션은 개념 회사라는 소리를 듣는다. 잘못된 정보로 데즈카 오사무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데즈카 오사무가 저 방식을 채용한 것도 아주 옛날일이며, 시대가 조금 차이나는 정도면 몰라도 50년은 넘게 지났는데도 데즈카 오사무 탓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구닥다리식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런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를 업계가 얼마나 했었는가?'''에 대한 책임회피라고 볼 수 있다. 문제가 있었으면 진작에 바꿨어야지 데즈카 오사무보다 푸대접을 하는 사람들이 데즈카 오사무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